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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laws of Prassion (English-Final)-10 Jan 2017

Prasssion 신임대표 권영복 목사 선임

WKTV USA방송

국제기도선교센터 ‘프레션’ 신임대표에 권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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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10/27 16:21

프라션 선교회 대표에 권영복 방주교회 원로목사 
“연합 기도운동에 힘쓸 것”

 

 

 

 

 

 

 

 

 

권영복 목사(왼쪽에서 3번째)와 프라션 선교회 임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 이원상 목사 소천으로 공석인 프라션 선교회 대표에 서울 방배동 방주교회 원로목사인 권영복 목사가 선임됐다.

프라션 선교회는 27일 비엔나 우래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 목사는 내주부터 사역에 들어가며, 조만간 취임식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차희 프라션 사무총장은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기다렸던 권 목사가 내주 월요일 프라션 모임에서 첫설교를 한다”며 “초교파적 연합 기도 운동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복 목사는 “예수는 교인들이 사탄의 어두운 힘을 물리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신다”며 “거룩한 성령의 힘으로 선교해야 하고, 성령의 능력은 기도할 때 나타난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워싱턴 동포들에게 연합 기도 운동을 강조하고, 선교 전략을 제시할 계획이다. 권 목사는 “개별 교회 차원을 넘어 워싱턴지역 전체에 선교전략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기도제목과 훈련도 있어야 한다”며 “기도의 불씨를 일으킬 프라션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고 이원상 목사 부인인 이영자 사모는 “기도로 평생 목회한 권 목사가 대표로 취임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 사모는 “워싱턴지역 작은교회와 큰 교회의 연합이 중요하다”며 “한인 차세대가 세상 죄악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으로 자라나 미국에서 중요한 위치에 배치되도록 프라션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권 목사는 명지대 영문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방주교회에서 27년간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은퇴 뒤 알래스카에서 원주민과 노숙자를 대상으로 선교했다. 씨드 국제선교회 한국 본부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SEED 국제 본부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심재훈 기자 shim.jaehoon@koreadaily.com

이원상 목사의 전기 출간(2017/5/13)

이원상 목사의 전기 “이제 우리가 그 길을 걷겠습니다 : 이원상 목사의 생애와 목회”가 출간되었다. 두란노서원에서 발행한 이 책은 300쪽 분량으로 이원상 목사의 어린 시절부터 소천하기까지의 생애와 목회 및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의 향기를 남긴 사람, 이원상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목사님이 걸어가신

우리도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평범한 은사를 가진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는 말주변도 별로 없고, 사역관리도 못하고, 대단한 설교자도 아닙니다. 
내가 유일하게 잘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청빈하고 겸손하게 예수님만 따라가기를 소원하고, 또 실천하고자 애썼던 이원상 목사의 삶과 목회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원상 목사는 기도와 말씀 사역에 온전히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언제 어디서나 기도에 힘썼고, 2000명 교인의 이름을 다 외우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등 힘겨운 이민생활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인도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의 향기를 남긴 사람’이라 평가한다. 일생 동안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결하게 불태운 이원상 목사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올려드리고, 독자들은 신앙여정에 따르고 싶은 이정표를 발견하기를 소원한다.

 

1부는 목사님의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거쳐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담임목회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내용을 다루었다.

2부는 이원상 목사님의 목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3부는 이원상 목사님의 목회 후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4부는 이원상 목사님의 목회와 설교를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

5부에서는 목사님 가족의 조사를 실었고,

6부에서는 목사님을 추억하는 다양한 분들의 목소리를 소개하였다.


고 이원상 목사 전기 출간 
“이제 우리가 그 길을 걷겠습니다”
일대기·목회관 수록…21일 출판감사예배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5/13
 조상우 목사, 정상준 목사, 이영자 사모, 류응렬 목사, 이종석 집사, 조경 집사(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조상우 목사, 정상준 목사, 이영자 사모, 류응렬 목사, 이종석 집사, 조경 집사(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한 고 이원상 목사 전기가 출간됐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출판부가 발간한 이 책은 이 목사의 일생을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부임 전과 목회 시절, 은퇴 후 사역 등으로 나눠 소개하고, 이 목사의 설교와 목회관를 담았다. 또 가족이 이 목사께 드리는 추모의 글과 지인들이 본 이 목사에 관한 글이 300쪽의 책에 빼곡히 채워져 있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류응렬 담임목사와 이 목사의 부인 이영자 사모 등은 12일 버지니아 센터빌의 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 출간 소감을 밝혔다. 류 목사는 “좋은 목회자의 모델이자 신앙인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목사님의 삶을 책으로 보게 돼 기쁘다”며 “고결하게, 하나님이 주신 삶을 향기롭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모는 “책 제목 ‘이제 우리가 그 길을 걷겠습니다’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던 이 목사님은 살아계셨을 때 수년간 H마트에서 매일 전도하는 등 말씀 그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전기 제작은 이 목사가 생전에 프라션 선교회의 조차희 집사와 아들 이요셉 목사에게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제작을 위한 첫 모임은 지난해 10월 20일 열렸다. 이원상 목사가 어릴 때부터 미국유학까지의 이야기는 주경로 목사가 썼고, 중앙장로교회 목회기간은 백순 장로, 목회 은퇴 뒤의 삶은 손상웅 목사, 목회관과 교회관은 류응렬 목사가 맡았다. 중앙장로교회 교인들도 글쓰기에 동참했다.

500쪽 분량의 초기 원고는 올해 1월에 나왔다. 전기 코디네이터인 이종석 집사는 “원고를 300쪽으로 줄여 한글판으로 출간했다”며 “중앙장로교회 영어번역팀은 초기 원고를 번역해 아들 이요셉 목사와 딸 유니스에게 감수를 맡겼다”고 말했다. 영어판 작업은 미국 출판사가 진행하고 있다. 이 집사는 “이 목사님은 특히 2세들을 위해 영어로 된 책을 내고 싶어 하셨다”고 설명했다.

전기 ‘이제 우리가 그 길을 걷겠습니다’(두란노)는 오는 21일(일) 오후 5시 제2예배실에서 열리는 출판 기념 예배에서 800부가 배포될 예정이다. 이 책은 교회 홈페이지(wonsanglee.kcpc.org/)에서 온라인으로 구입할 수 있다.

심재훈 기자 shim.jaehoon@koreadaily.com

Arise2017 이 땅 고치소서(2017/1/22)

 

예수 향기 남기고 떠난 고 이원상 목사(2016/12/5)

이원상 목사, 하나님 품에 영원히

WKTV USA

게시일: 2016.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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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향기 남기고 떠난 고 이원상 목사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겸손과 기도의 목회 인생
생애 마지막 설교서도 전도·선교 강조

[워싱턴 중앙일보] 12.06.16 06:40

 

5일 소천한 고 이원상 목사는 1937년 중국 만주 산성진에서 부친 이성봉 장로, 모친 윤봉선 성도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1945년 부친 이성봉 장로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북한 만포진으로 이주했지만, 북한에서도 신앙생활이 어려워 2년 뒤인 1947년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 청량리로 내려왔다. 이 목사는 이곳에서 전농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녔다.

1949년 가족들을 따라 경상북도 경산으로 옮겨간 이 목사는 경산중학교와 대구상고, 대구 계명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505병기단에서 군복무를 했다. 1965년 경북대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목사는 1966년 약사인 김영자 사모와 결혼했다. 훗날 이 목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이 김영자 사모라고 고백한다. 이 목사는 지난 2003년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내는 목사인 나보다 교인 가정 하나 하나를 더 깊게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왔다”며 “25년간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약사로 근무하면서도 교회일에 소홀함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잠이 부족할 텐데도 낮에 내가 심방갈 때는 항상 동행하는 등 교회 일에 빠짐없이 동참해줬다. 두 자녀도 아내가 책임지고 양육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1968년 미국으로 와 댈러스 신학교에 입학,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이 목사는 “그 때는 미국에 오래 살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당시 댈러스에 한인들이 300명 정도 있었는데 점점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미국에도 한인목회자와 한인교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972년 댈러스 신학교를 졸업한 이 목사는 1973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구약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977년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청빙을 받게된다. 이 목사는 1977년 12월 전도사 신분으로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교역자로 부임했다. 당시 교인은 14가정, 30명이었다.

목회 초기에 어려움이 많아 신학을 공부했던 댈러스로 옮겨갈 생각을 하고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던 이 목사는 “교인들의 만류로 교회에 계속 남게됐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무사히 목회를 마치게 됐다. 나의 목회인생을 정리한 신앙고백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다”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회를 하면서 ‘기도생활’을 가장 중요한 목회원칙으로 삼았다. 이 목사는 “다른 목회자들처럼 훌륭한 담임목사 밑에서 목회훈련을 받지 못하고 곧바로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기도생활을 가장 중요한 목회원칙으로 삼았다. 1977년 부임하면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일기예보상 다음날 새벽 날씨가 나빠 교회에 나오기 어려울 것 같으면 아예 그 전날 교회에서 밤을 지새우더라도 새벽기도회를 중단하지 않았다. 82년부터는 매주 수요일에 금식했다. 기도사역과 더불어 교인들을 돌보는 심방사역에도 힘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2003년 9월, 25년 10개월간의 목회를 마치고 은퇴했다. 은퇴를 앞두고 이 목사는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 훈련을 강도 있게 지속하지 못한 것과 지역사회 기여가 미흡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목사는 “장로, 권사, 안수집사, 구역장, 선교회장들은 교회의 큰 자산인데 다른 업무에 시간을 빼앗기다보니 이들을 훈련시키는 데 다소 소홀했던 것 같다”며 “또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2009년 9월 영국 웨일즈 복음 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논문제목은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이끈 교부 요한 크리스토스무스와 와싱톤중앙장로교회를 이끈 이원상 목사의 목회 리더십 원칙에 관한 수세기를 초월한 비평적 탐구와 대화’다.

이원상 목사는 2013년 프라션 선교회를 창립, 생의 마지막 열정을 기도운동에 쏟아부었다. 식도암으로 투병하던 지난해 12월 항암치료 중에도 프라션 국제선교기도센터 행사에 참석해 기도운동을 강조했다. 기도센터 건립 관련 행사에서 이 목사는 “초·중·고등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기도스쿨을 통해 기도훈련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학생과 은퇴 선교사, 안식년을 맞은 선교사들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ARISE 2016’ 행사 준비를 하며 회개하고 기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나아지기보다 점점 어두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구약 느헤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여 죄와 허물을 자복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세계역사를 주관하고 개인과 가정, 교회를 회복시키는 하나님 여호와께 말씀 위에 서서 찬송과 기도를 드리자”고 말했다.

지난 6월 워싱턴DC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서도 회개와 기도를 강조했다. 당시 바람이 많이 부는 현장에서 이 목사는 큰 목소리로 청중들에게 말씀을 선포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7가지 질병을 지적했다. 이 목사는 “첫째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는 물질 우상을 섬기고 있고, 둘째 거룩한 삶보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고 있으며, 셋째 경건한 가정이 무너지고 있고, 네 번째는 교회가 빛을 잃었고, 다섯 번째는 정직한 마음이 무너지고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며, 여섯 번째는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일곱 번째는 성경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목사는 “지금 미국은 해마다 4000개 교회가 문을 닫고, 4만여 명이 자살하며 동성결혼을 대변하는 사람이 높임을 받고 있다”며 “한국과 미국이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바뀌고,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며 정직한 사회로 회복되도록 기도하자”고 설교했다.

지난 8월 13일 올네이션스교회에서 열린 ARISE 2016 기도성회에서 고 이원상 목사는 워싱턴한인사회에 마지막 당부를 했다. 이 목사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최상의 소원과 목표는 전도와 선교”라며 “우리가 사람 낚는 어부 일을 안 하고 주님 앞에 가면 칭찬받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고 이원상 목사 약력>
◇1937년: 중국 만주 산성진에서 부친 이성봉장로, 모친 윤봉선 성도 사이에서 출생
◇1945년: 가족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북한 만포진으로 이주
◇1947년: 가족들이 북한에서도 신앙생활이 어려워지자 서울로 피난
◇1949년: 경북 경산으로 이주, 경산중·대구상고·계명대 졸업
◇1959년~1961년: 505 병기단에서 군복부
◇1966년: 약사인 김영자 사모와 결혼
◇1968년: 미국 댈러스 신학교 입학
◇1972년: 댈러스 신학교 졸업
◇1977년: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전도사 부임
◇2003년: 와싱톤 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직 은퇴
◇2009년: 영국 웨일즈 복음 신학교 철학박사 학위 취득
◇2013년: 프라션 선교회 창립

심재훈 기자 shim.jaehoon@koreadaily.com